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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스위스 Flüeli

2015.06.27 18:54

전영선 조회 수:4606 추천:1

성지순례 스위스 Flüeli-Ranft, Sachseln und Luzern


내가 처음으로 갔던 성지순례는 작년 봄에 12일 파리스 성지순례 이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한참 어렵고 건강도 않좋았는데, 무슨 생각 이었는지 가고 싶어 따라 나섰다. 독일 신부님 4명과 같이 하는 여행에 필리핀 신자들이 많고 한국분들이 한 15명쯤 같이 가신것 같다.

나는 이제 병아리 새 신자로서 영세만 받았지 아무 것도 모르니 아무 준비도 없었고 아픈 허리로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견디나 하는 걱정이 있기도 했으나, 버스에 시달리지도 않고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는것 같고 처음들어보는 독일어 묵주기도가 서툴게 들리지도 않았다. 오래간만에 듣는 독일 말이 그리 반갑고 친근하게 들렸는지...아마 내가 남편하고 대화하던 독일어가 그리웠든것 같다.

그래서 그 순례자 분들이 하시는 묵주기도 따라 하며 파리에 도착했을때, 허리도 안 아팠고, 그 날 밤 잠도 잘잤다. 잠 귀가 밝고, 잠자리를 바꾸면 잠을 설치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항상 “너는 밤에 집 지키는 사람” 이라고 놀리기도 할 정도로 예민한 내가 그 날은 방을 다른 분하고 함께 쓰는데도 설치지 않고 포근하게 잤다. 그래서 그 파리스 첫번 성지순례는 내에게 항상 신비롭게 기쁘게 기억이 남아있다. 아마 그때 부터 주님께서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끌어 주신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두번째 성지순례에 서슴없이 따라 나섰다.


2015 년 6월 17일 (수요일)


아침 바람이 상쾌하고 햇살이 환한 이른 아침이다. 본당 성당에 도착하니 출발하기 반시간 전인데도 벌써 한 스무명이 넘는 순례분들이 와 계시다. 짐을 버스에 실는 분들, 잘 다녀 오라고 물건을 건네주면서 배웅하시는 분들, 서로 즐거운 담화에 우애가 가득해 환한 햇살이 더욱더 따듯하게 느껴진다. 늦어도 645분에 도착 하라는 지시가 있어 내 나름데로는 서둘러 왔는데 모두들 과연 부지런하시다.


선하고 착하게 생기신 버스 기사님이 715분에 출발 하시어, 배웅하시는 여러분을 뒤에 남긴채 Langenfeld를 떠났다. 가는 길에 Siegburg-West 고속도로 주차장에서 Bonn 에서 오시는 분들이 탑승하시니 순례자가 45명이다. 곧 이어서 신부님의 강복이 있었고,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하시는 성지순례에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된다고 하신다. 나도 34일의 긴 성지순례라 어느정도의 기대와 호기심이 있으나, 언제부터 인지, 여행가기 전에 치밀한 계획과 큰 기대를 버렸기에, 오는데로 가는데로 받아들이리라고 마음 먹는다.


8시가 조금 넘자 여기 저기에서 아침식사 하시는 분들이 있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꽂들을 피우고, 그래서 창문으로 비치는 아침 햇볕이 더욱더 따듯하게 분위기를 들띄운다. 가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모두 같이 묵주기도도 바치고, 휴게소에서 잠깐 쉴때에는 우리에게 호흡과 운동을 지도하는 형제님도 계셔, 한동안 동심으로 돌아가 굳은 몸을 돌려 따듯하고 밝은 휴게소 에서 운동도 하고, 어린이들 처럼 동물 이름을 대면그 동물의 발 숫자를 말로 하지 않고 박수로 치는 게임도 하며, 웃음이 끝기지 않고 즐겁다.


점심시간은 휴게소에 정해주신 4개의 조 끼리 나란히 의자에 앉아 준비해온 밥과 여러가지 (진수 성찬) 반찬을 먹으니 앉은 등어리가 햇볓에 따듯하다. 신부님은 여기 저기 돌아 보시며, 아마 맛잇는 반찬만 골라(?) 잡수시는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 하시다. 서로 권하는 반찬, “이건 누가 해왔어요, 참 맛있네” “응, 그건 내 반찬이야, 맛있지” 하시는 분들... 얼마나 정다운 모습들 인가!

집에서 항상 나비와 호젓하게 지내는 나에게는 이런 자리가 혼잡 하지도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 사는것 같이 복작거려 흐뭇하고 정답다. 오늘은 이 복받은 날씨에 성인의 발자취를 찾으러 가는 성심이 같이하는 길이기에, 우리의 훈훈함이 더욱더 느껴져 청명하고 파아란 하늘을 한번 더 올려본다. 우리를 지극히 내려다 보시는 분이 있는곳에, 그 맑고 아늑한 곳에 꼭 그 분이 우리를 지켜보시는 것 같아서...


점심식사 후에는 나곤함에 한 잠도 자며, 소근소근, 끼리끼리 얘기도 하며 시간도 보내, 지루한 줄 모르고 어느새에 도착지에 닿았다. 예정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 미사 시간까지 여우가 없어 빨리 미사하는 경당으로 내려가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이곳 정경에 도취된 우리 일행은 한동안 감탄이 이곳 저곳에서 끝이지 않았다.

그 옛날 Klaus 성인이 사신 이곳 경치는 이편 저편에 절벽같은 산들이 푸른 숲으로, 푸른 풀밭으로 덮이고 그 산사이에 구불 구불한 길을 따라 계곡까지 내려가면 맑고 청명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절경이다. 입이 저절로 딱 열려지고 숨이 막힐 정도로 멋있는 절벽의 경치! 그 사이에 흘러가는 듯한 구비구비한 오솔길...


우리 일행은 버스에서 짐도 내리지 않고 Bruder Klaus 성인이 사시던 본가 부터 관광 했다. 가정이 부유했던 그 분은 15살 이나 어린 아내와 열 명의 자녀를 두고 지주, 시의원 그리고 판사, 장교 등의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나경자 클라라 자매님이 버스안에서 그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그렇게 박식하고 지식이 많으신 분이었지만 글을 읽지도, 쓰시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유하신 분들도 글 맹인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요즈음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형식적이고 짧은 가를 알것도 같다. 꼭 학교에서만 무엇을 배우려고 하는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 집에서도, 아이들 에게서도, 또는 자연에게서, 혹은 동물들에게서도 얼마나 배울것들이 많은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만 우리의 영적에 꼭 필요한 지식들 인가?


스위스가 낳은 Bruder Klaus 성인은 (본명은 Niklaus von Flüe, 1417-1487) 동료 법관들의 부패와 불위를 보며 회의와 그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셨고, 또 교회와 사제에게 실망이 커 은둔생활을 결심하고 멀리 떠나려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분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 (Ranft) 평생 은둔생활을 하며, 조언을 청하는 모든 이에게는 조언을 주면서 기도하시며 하느님을 찾으셨다. 그분은 조화와 평화를 위해 모든 힘을 쓰셨고, 이 사상들은 현재까지 스위스를 중립국가로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분을 상상하며 그 산 오솔길을 걷는다. 그분이 나이 50살에 아내와 10명의 자녀와, 이제 석달된 막내 아이를 두고 홀로 은둔생활을 하려고 그 산밑에 내려가신것을...

사랑스런 아내와 귀여운 자녀들과 부유한 생활을 버리고 무엇을 찾으셨을까? 마음의 평화, 신앙의 위로? 하느님과의 일치, 사랑? 그런 목적을 위하여 인간과의 관계와 사랑을 끝을수 있을까나도 모든것을 버릴수 있을까?


그 산밑에 도착해 아담하고 자그마한 경당에서 우리 식구만 모여 미사를 드렸다. 그 분이 주무시던 작은 오두막 집 바로 옆에 주민들이 이 경당을 세워 주었다고 한다. 그 분은 20년 동안 금식하시고 성체만 모시고 생활하셨다고 한다. 포근하고 따듯함이 감도는 미사이다. 그 분의 숨소리라도 들릴것 같은 조그만한 경당. 이곳에 모인 우리 식구들, 모두 감회가 깊은 얼굴이다.

그분은 주무시던 자리에서 왼쪽 조그마한 창문은 열고, 사람들과 대화와 조언을 나누었고, 오른쪽 창문을 통해 경당은 내려보셨다고 한다.


이경당 밑에는 그 분 돌아가신 후 또 하나의 경당을 지었는데, 그곳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 경당을 성모 마리아 경당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들은 미사후 그 경당 근처를 돌아보고, 산을 타고 다시 오솔길을 오른다. 나는 그 시냇물에 내려가 청명한 물에 손을 담갔다. 수정 처럼 맑고 투명한 물. 그 분이 이 물가에서 계셨을까? 이 물처럼 청명하게 깨끗하게 살고 싶으셨나 보다.

수채화 한폭의 그림과 같은 이 계곡, 평화롭고 조용한 산 능선. 나도 구불 구불 저 길을 따라 산넘어 들건너, 자연만 보면서 한 세상을 살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젊었을 때부터 좋아하던 박경리 작가가 하던 말이 생각 난다. ...또 한번 살아볼수 있다면, 일 잘하는 남자 하고 산에 묻혀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하신...


걸어서 호텔에 도착해 그때야 방 배정을 받고, 곧장 저녁 식사를 한후 짐을 풀었다.


2015년 618 (목요일)


아침 식사전에 청명한 공기속에 작은 길을 따라 아침산책을 했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 가는데 새 한마리가 내 앞 장을 선다. 푸르르 날라 몇 발치 가서 또 나를 기다리는 것 처럼 풀 밭 근처에 폴삭 앉는다. 그러기를 몇번, 가만히 보니 집에서도 흔히 보는 빨강 꼬리 새 (Rotschwänzchen) 이다. 폴석 폴석 나를 앞장서 마치 길을 안내 해주겠다는 것 처럼 서두른다. 아마 그 새도 사람을 보니 반가운 가보다. 나도 기다리던 사람을 보는듯 반갑다, 아침이면 나비가 앞 장을 서는데 오늘은 빨강 꼬리 새가 내 앞 장을 선다.


오늘은 아침식사후 Sachseln 본당 성당으로 떠났다. 이 성당에 Bruder Klaus 성인의 신체가 묻힌 곳이다. 그리고 그 분의 큰 아들이 이 본당의 신부님 이셨다고 한다. Bruder Klaus 성인 신체는 제대단 밑에 유리 상 안에 모셔있고, 그 분이 항상 바라 보시고 묵상 하시던 수레바퀴의 그림이 걸려있다. 글을 읽지 못하신 그 성인은 이 바퀴의 그림을 보고,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통해, 하느님의 끊임없는 창조와 구원 그리고 사랑을 이해하시고 실행하시려고 노력하셨다고 한다. 그 그림 한 중앙에는 모든것의 근원인 하느님이 계시고 그 분으로 부터 삼위일체가 이루어져 창조, 말씀 그리고 구원을 보내시는 것이 이 수레바퀴 그림에 역역히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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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사는 어제 그 작은 경당에서의 미사보다 화려하고 웅장하다. 제대단 밑에 계신 그 분의 은빛의 신체를 보며 그분이 추구 하시던 것들을 생각하면 나에게 질문해본다:


삶이 주는 시련 또는 아픔이 견디기 힘들때, 과연 나는 하느님의 시선으로만, 또 하느님의 기준

으로만 살 수 있을까?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고 사무칠때에 나는 모든것을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이기고, 참고, 견디고 살 수 있을까? 그러면 언젠가 는 삶의 기쁨이, 충만이 그리고 그 고귀한 진실이 내 삶이 되어 내가 정결해 질 수 있을까?

내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아, 건너에 계신 주님을 쳐다보며, 대답을 찾는다.

내 눈시울이 뜨거운 것은 아마도 깊은 뜻이 있다기 보다는 아직도 세속적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근근 한다는 것이요, 내가 그분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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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후에 정원에 나오니, Bruder Klaus 성인의 아내 Dorothea 동상 앞에, 조금전에 성당에서 뵌 독일 부제님이 계시다. 오래전에 한국에 가 본적이 있고 그래서 아직도 한국 인상이 깊게 남아있다고 하신 분이다. 우리가 그 부제님을 이곳에서 만난것도 인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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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us 성인의 박물관을 돌아본 후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 코스인 Einsiedeln 수도원 으로 향했다. 버스가 가는 동안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점심식사 계획을 한 장소에서 휴계를 못 했다. 어느새 목적지까지 도착했는데도, 비가 안 그친다. 다행히 빗발이 조금 희미해 지기에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어느새 회장님께서는 주차장 옆에있는 학교에 들어가 그 학교 운동장에서 점심식사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오셨다. 우리는 버스안에 있는 햇반, 반찬들을 꺼내어 그 학교 운동장에 있는 두개의 큰 고목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다. 고목 나무를 돌려서 쌓아놓은 조그만한 담장이 둥근 밥상이 되었고, 우리는 그위에 쭈욱 반찬을 차려놓고 그 앞에 둥글게 서서 점심을 먹었다. 호텔에서 아침에 따듯하게 데워준 햇반과 가지가지 반찬을 차려놓은 둥근 돌 상이 진수 성찬이다. 조금 있으니 비가 말게 가시고 햇빛이 반짝 비친다. 와와... 여기저기서 화 탄... 하느님 감사 합니다...아마 우리가 어느 식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다면 이런 추억도 없을것이다.


점심 식사후에 우리는 Einsiedeln 수도원을 탐방했다. 이 수도원은 Meinrad 성인이 조그만한

은수처를 짖고 생활하셨던 곳이다. 그 분은 재산을 노린 두 명의 범인에게 살해 당하셨는데, 그분이 보살피던 까마귀 두마리가 도망가는 범인들을 끝까지 뒤쫓아가 결국 경찰에게 잡혔다고 한다. 두 까마귀는 수도원 천장의 조각에도 선명하게 볼수 있다. 그 분이 순교 하신후 지어진 이 수도원이, 그 후에 발전되어 후에 대 수도원이 되었다고 한다.

대 수도원인 만큼 웅장하고 위엄하다. 수도원 하면 내 생각에 조촐하고 아담하고 빈곤함이 나타난다고 짐작했는데, 이곳은 그 반대로 크고, 장엄하고 부유함이 물씬하다. 수도원 중간쯤에 크고 웅장한 철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대 수도원을 상징한다고... 철장 앞에는 가난한 수도사들이 수도하고, 그 철장 안에는 부유한 수도사들이 들어갈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가난하고 굶주려 수도원에 들어오는 수도사들과 부유하고 물질이 풍부한 가정의 출신인 수도사들을 구분하는 수도원... 조금 씁쓸하다.


검은 옷을 입은 성모경당은 아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성모상이, 수도 없이 많은 순례자들이 켜 놓은 촛불에 검게 그을려 졌는데, 그 것을 후에 아주 검게 색칠을 하였다고 한다. 그 경당앞에 우리 식구끼리 않아 성모님을 바라보며 성모 성가를 불렀다. 우리 김지수 아브라함 신부님이 그 성모상 앞에서 우리에게 던진 질문들은 오래동안 내 마음에 울려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무엇이며, 또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에게 제일 고귀한 사람은 누구인가, 또 누가 나를 제일 고귀한 존재로 생각 하는가?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무엇을 성모님께 봉헌해야 하는가?

순종이 무엇인가? 순종은 옯고 그름을 알면서도 따라주는것, 또 어떤때는 상대방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도 따라주는것인가....


생각 하면서, 또 대답을 추구하면서, 성모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래 동안 앉아 있었다.



2015년 619(금요일)


어제 밤에 창문 사이로 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침 산책을 나와보니 하얀 안개가 산사이에 걸려있고, 자욱한 안개가 저 깊은 산 골작 부터 하늘로 하늘로 솟아 오른다. 절경이다! 공기는 차도 싸하니 청명하고 시원하다. 깊은 숨을 들어 마시고 가쁜한 발걸음으로 산 모퉁이를 돌았다. 드문드문 사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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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Luzern 시와 Pilatus 산을 관광할 예정이다. 여행 안내자는 한국분과 또 Kiel 에서 와 이곳에 사신지 벌써 26년이 된다는 독일여자분 Gabriele 이다.

경험이 풍부한 도시 여행 안내자인 이 독일분은 스위스 역사와, 어떻게 스위스가 건설돠었는지, 왜 그 호수이름이 Vierwaldstädtesee 인지... 등등 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로이스 강의 나무 다리, 영국 여왕이 묵었다는 Hotel Balance, 또 그 시의 광장, 거기에는 가나의 결혼식이 벽화로 그려져 있고, 문학가 괴테와 음악가 바그너가 왔다 갔다고 알려 주기고 했다.


Luzern 시 관광이 끝난후 작은 공원에서 남은 반찬을 톨 톨 털어 점심을 먹고 따듯한 햇볕에 끼리끼리 앉아 담화 하며 보내는 시간이 한가롭고 평화스럽다. 스위스에 유명한 악기 Riesenhorn을 공원에서 연주하던 남녀 두분도 인상에 남는다. 쉽게 보이지만 여간해서는 그 악기에 소리를 낼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음악의 여운이 남는다. 여기저기 사진찍는 분들이 바쁘다.


점심식사후 관광 배를 타고 Pilatus 호수를 거쳐 Pilatus 산으로 향했다. 햇빛이 환하고 따듯한 날에 관광배를 타니 역시 관광객 들이다. 앞에 보이는 산과 눈부신 햇볓이 푸른 물에 부서지는데 모두들 사진찍는데 정신이 없다.

배에서 내려 곧 산으로 올라가는, 4 명이 탈수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산 중턱에 있는 정거장에서 내렸다. Pilatus 산의 정상은 2.128 meter 가 넘는데 우리일행은 그 중간쯤에 있는 Krienseregg  산 턱에서 (1.026 m) 내렸다. 케이블카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찔한 경치이다. 그래도 그 비탈진 산 턱에 소들이 풀을 먹으며 한가롭게 누워 쉬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마땅한 자리를 찾아 이곳에서 야외미사를 보았다. 앞에는 푸른 풀밭, 그 위에는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카의 길, 옆으로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평화롭고 한가한 곳이다. 야외 휴게실에 있는 조그마한 나무식탁을 제대단으로 모시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보는 야외미사. 여기저기 앉고, 서고, 기대시는 우리식구들의 모습도 평화스럽다. 우리의 영혼과 돌아가신 영혼들이 하늘 저 끝에서 서로 만나 기뻐하며 하나되는 듯...


미사후 다시 케이블카 정거장까지 가며 대화하는 동안 우연히 같이 가시는 제대부장님 아네스 자매님이 중 고등학교 선배이시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둘다 소리를 지르듯이 기뻐했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아네스 선배님은 작년에 성령 묵상회에서 같은 방에서 지내, 각별히 친근감이 가는 분이신데... 그 분에게서 김현숙 헬레나 자매님이 후배라는 것도 들었다. 마음이 든든 하다. 이곳에서 선배님과 후배가 있다는 것이, 외로움이 덜어지는것 같아... 그래서 오늘은 기쁘고 감사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런 인연 주신것...



2015년 620(토요일)


아침식사하는 식당 옆의 조그만 방에서 오늘은 새벽미사로 시작한다. 6시 미사인데, 시간이 되자 자리가 모두 꽉 찼다.

아침식사 후에 서둘러 짐을 싸고 버스로 향한다. 가늘게 가늘게 가랑비가 내리고, 구름낀 하늘이 우리의 이별을 아쉽게 여기는것 같다, 아니면 이별을 쉽게 하라고 그러시는지... „Abschied nehmen bedeutet

immer ein wenig sterben....헤여진다는 것은 항상 조금은 죽는것과 같다” 고 하던 어느분의 말씀이 생각 난다.


클라라 자매님이 버스 안에서 Speyer 성당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그 웅장한 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비가 그치고, 햇님이 반짝 비친다. 우리 순례자들이 은총을 많이 받으신 것 같다. 버스에 앉아있을 때에는 비가 오고, 버스에서 내리면 햇볕이 나고...


Speyer 성당은 세계에서 제일 큰 로마니 성당이라고 한다. 웅장하고 거구하고 장엄한 대신 성당안에는 단조롭고, 또 화사하지 않다. 오랜 역사가 있는 곳이라 성당을 둘러보는 사람이 많고 우리처럼 단체로 오신 분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인다. 집에가는 길인 우리식구들은 귀가 기분에 조금은 들떠있는 것도 같다.


오늘 점심식사는 그 성당에서 가까운 중국집에서 푸짐하게 먹었다. 마지막 날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라서 느긋하기도 하고 또 무사히 이 여행을 끝내고 귀가한다는 안도감도 있어 모두들 마음이 환하게 풀린듯 하였다.

나는 우리 식구들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마음이 한없이 좋으신 우리 김 아브라함 신부님, 첫날 저녁에 대모님과 함께 둘이 산책간다고 나왔을 때, 어둑 어둑해서 돌아올것 같은 우리들이 걱정 되시는지 저 멀리에서 우리를 따라 오시던 신부님. 항상 신부님 곁에서 말없이 도우시고 묵직하신 우리 회장님, 성심과 정성을 다하여 봉사하시는 선교부장님, 클라라 자매님, 그리고 권미진 루치아 자매님, 또 이번 여행 숙소와 과정, 안내자 등등으로 마음쓰시고 양면으로 수고하신 박영숙 세실리아 자매님...등등

이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 뒤에서 이 처럼 수고하시는 분들이 없다면 이런 여행도 가능하지 않고 또 이번 처럼 추억에 남지도 않을 것이다.


하느님, 우리를 이곳까지 이끌어 주신 자비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이번 성지순례에서 받은 은총과 사랑, 항상 저희에게 그것을 인식하게 하시고 그 여운이 오래 오래 우리 마음에 머물게 하여주소서...


2015627

전영선 안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