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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 성지순례 - 2/3

2019.05.09 11:42

운영진 조회 수:24

+찬미 예수님


김양숙 리타 자매님이 기록하신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본당에서 다녀온 라인란트 지역 성지순례기 입니다.



Der Dom zu Augsburg von Norden aus gesehen 1844


2019년 4월 30일

우리는 미사를 들이기 위해 아욱스부르크 Augsburg 로 갔다. Augsburg은 바이어른 Bayern 지방에 있으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됀 도시이다. Dom Maria Heimsuchung 마리아 방문 대성당 은 역사적으로 서기 500/600년대에
첫 주춧돌을 세웠을 것 으로 추정하나, 무너지는 성당을 955ᅳ1065 년에 Kaiserin Adelheid에 의해 재건되었다. 우리는 미사를 측면통로 Seitenschiff 에서 드렸는데, 하얀 벽이 은은하고 고요한 Herz Jesus라 이름하는곳이다. 강론은 부활의 자세 즉 공동체의 모습 이었다. 사도행전에 나와 있듯이 초대교회의 모습이 현제 우리공동체의 기준이 돼며 , 부활을 기억함은 서로 나눔의 자세가 특징이므로, 부활공동체를 우리자신에게 돌아보게 돼는 기회라고 했다. 첫째는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부활을 살아가는 모습인데, 이 의미는 하느님에게 봉헌하므로써, 신앙고백과 예수부활을 깨달음으로서, 주님 에게서 받는것을 주님에게 바치며, 목숨까지도 아까와하지 않는
사도들 이였음을 상기시켰다. 둘째로는 나눔을 중심으로 초대교회의 공동체의 모습을 염두에 두는 모습 이라고 했다,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께 묻고 대답한 석학학자 니코데모와의 예수님의 증언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세상의 일 과 하늘의 일 을 믿고, 모세가 황야 에서의 기적처럼, 믿는자만이 하늘나라에 갈수있음을 알려주는 것 인데,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자세, 바로 이런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자세가 돼어야할 것 을 촉구하며 강론을 끝냈다.

미사후 가이드를 통하여 Augsburg을 더 자세히 알게 돼는데, 로마제국시절 아우구스트 황제의 의해 도시가 조성돼어 현제의 이름으로 명명 됐으며, 상업도시로 큰 번성도 누렸지만, 전쟁때마다 상흔도 피해갈수 없는 도시였다. Augsburg은 유럽 종교개혁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95개의 조문을 통하여 당시 부패했던 로마교황청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교리를 주장했으며, 그당시 독일의 제후, 시민계급, 그리고 인민주의자들의 폭팔적인 지지를 받는 루터복음은, 처음에는 로마교황청의 강한 탄압을 밭았으나, 두 종파간의 갈등은 아욱스부르크회의를 통해 로마카토릭 처럼 하나의 종교로 동등하게 인정받게 됀다. 파스텔 톤 건물들의 동화적인 Maximilian 거리에 르네상스의 모습처럼, 중세시절 무역의 중심지였던 이곳의 막대한 재산을 추적한 대부호 Fugger 푸거가문의 궁전은 18세기의 로코코양식으로 귀족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시청사와 페클라흐탑은 2차 대전 후 화마로 파괴된후, 다시 재건된 모습 이었으며, 시청사 3층에는 온통 금과 명화로 장식된 황금방이 있다는 가이드의 이야기만 듣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부유했던 명성의 근거는 푸거라이 Fuggerei 의 골목을 보고도 알수 있는데, 야콥푸거 Jacob Fugger 가 가난한 시민들을 위해 1년에 1굴덴에 임대료를 받고 지은 임대주택단지는, 지금 박물관으로 돼 있었다. 밖에서만 본 사회복지 임대주택의 입주조건이 그당시의 첫째는 카토릭 신자 이어야 하며, 둘째는 하루3번 푸거가문을 위한 기도를 하고, 세째로는 22시 이후에 는 문을 닫는 생활조건 이었다고 가이드는 설명하였다.

점심식사후 에 간 클로스터 안덱스 Kloster Andechs는 해발 700m에 위치한 바이엔 에서는 가장 오래됀 순례수도원이다. 원래는 안덱스공작의 성 이었던 곳 인데, 안덱스가문이 여러가지 보물을 수집하여 1128년 순례지 를 설립하였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에 망치처럼 생긴 도구를 든 조형물은 인상적 이었으며, 성당골목 오른쪽에 걸린 10개가 넘는 나무십자가는 경건 함을 암시하는듯했다.

우리가 늦게 도착한 관계로 가이드는 15분 밖에 우리에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할때 , 나는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었다. 짧은 시간임에도 열심히 설명하는 가이드의 이야기는 1200년부터 모두에게 개방된 이성지는, 일년에 40,000명 이상이 찼는 성스러운 수도원으로, 약 150년후에 Kapelle 가 부서지며 귀중한 보물도 많이 사라지게 됐는데, 다시 성물을 찿게돼면서 1455년에 베네딕트 수도원이 세워졌으며, 그때에 맥주가 주조됀 기록도 있다고 했다. 여기에선 많은 순례자 들이 기적으로 이곳에서 차유 를 밭고 버리고 간 목발이나 휠차등을 모아둔 곳이 있으며, 정성으로 바친 묵주등도 함께 보관하고 있는데 , 기적은 지금까지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여기에는 의학이나 치의대, 자연과학치유, 목공등을 배울수있는 학교도 있으며,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만들어낸 맥주는, 현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고 했다. 순례자들이 많을때는 일년에 110,000리터의 맥주를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난후 우리는 성당을 둘러보게 됐는데, 엄청 화려하고 금장식으로 가득찬 제대와, 프레스코와로 채워진 천장은 어지러울 정도였다. 종교문화를 장식하는 그림과 조각은 2층에 거의 300개 정도가 되며,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조각은 돌아가신 예수님을 안고계신 성모님의 조각인데, 화려함은 작은 수도원 성당이아닌 중세유럽의 성당에서 보는 화려함이었다.

성당을 돌아본후 우리는 안덱스 맥주를 마시러 갔는데, 보는 순간 첫느낌에 맛이 있어 보였으며, 색깔도 맑은 햇빛에 비치는 노을처럼 밝은 노란색으로, 또 수도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기축으로 남겨, 덕분에 우리도 오늘날까지 양조의 전통으로 마실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저녁에도 20시에 쌍트 오틸리엔성당 에서 전날처럼 Komplet 를 드렸다. 이후에 키크고 친절하신 테오필 Theophil 신부님이 들려주신 오르겔솜씨는 누구에게나 가슴을 펑펑 두드리는 감동을 주었다.